
(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글씨상점, 특별전 전시물 )
올여름 방학, 스마트폰 대신 '붓과 먹'의 울림 속으로
(인천광역시교육청 = 고성미 시민기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온종일 모니터 속 네모 반듯한 컴퓨터 폰트에 갇혀 사는 우리들. 매일 엄청난 양의 디지털 활자를 소비하지만, 정작 마음을 울리는 따뜻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역대급 무더위를 예고한 이번 여름방학,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잠시 디지털 세상을 벗어나 아날로그 서정이 가득한 문화 피서를 추천드립니다.
송도 센트럴파크에 위치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기획특별전, ‘글씨상점’ 이야기입니다.

( 요즘시대엔 쉽게 만나볼 수 없는 글씨의 재료들 )
전시장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마음을 붙잡은 문구가 있습니다. "어떤 도구를 고르고, 어떤 종이를 펼칠지 선택하는 순간부터 이미 글씨는 시작됩니다." 매일 볼펜 한 자루를 쥘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집어 들던 제 일상이 떠올라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옛 선비들이 붓과 먹, 종이와 벼루를 단순한 필기도구가 아닌 보물처럼 여기며 '문방사보'라 불렀던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습니다. 도구 하나하나에 쓰는 사람의 취향과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설명처럼, 전시장 곳곳에 진열된 작가들의 손때 묻은 도구들은 그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깨끗한 창가에 앉아 먹을 갈며 마음을 정돈하던 옛 문인들의 정취가 시공간을 넘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조용연 작가의 전각 세계)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 중 하나는 우헌 조용연 작가의 전각 세계였습니다. 벽면을 빼곡하게 채운 알록달록한 전각 인영들과 서랍 칸칸이 정갈하게 진열된 수많은 돌도장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냅니다. 단단한 돌 위에 글씨를 새기고 찍어내는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작가가 흘렸을 땀방울과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전해져 묵직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반면, 새터 이상현 작가의 공간은 마치 유쾌한 놀이터 같았습니다. 전통적인 붓의 틀을 깨고 숟가락이나 칫솔, 둥근 도구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물건들로 글씨를 써 내려간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도구의 재질에 따라 거칠거나 부드럽게 표현된 한글 의성어와 의태어들은, 글자를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귀에 획이 그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강렬한 생동감을 선사했습니다.

(국립세계문자 박물관 글씨상점의 전시물)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에서 에어컨 바람만 쐬며 집 안에 머무는 것보다, 이렇게 시원하고 쾌적한 박물관을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여름 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르신들에게는 은은한 먹향 속에서 옛 정취를 반추하는 아늑한 시간이 되고, 기계적인 필기와 스마트폰 타이핑에 지친 학생들에게는 글씨가 얼마나 '힙하고' 자유로운 예술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전시의 마지막 자락에서 서로 마음에 드는 글씨체를 골라보며 "너는 이런 느낌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자연스럽게 아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하 상설전시실에서는 문자를 사랑한 이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수집가의 집》 전시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 올여름 아이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줄 방학 나들이 코스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합니다.
바쁜 일상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내 마음의 결을 닮은 글씨를 찾아 떠나는 여정.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과 함께 송도로 맑은 기운을 채우러 가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전시명: 기획특별전 《글씨상점》
운영 기간: 2026년 5월 1일 ~ 2026년 8월 23일
장소: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 (관람료 무료, 매주 월요일 휴관)
kksm1771@naver.com